
서랍 속 보험 증권들을 꺼내 본 날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낡은 서류 봉투를 열었다. 결혼 직후 친구 따라 대충 가입했던 보험 증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때는 3대 진단비가 뭔지도 잘 몰랐고, 그냥 암 걸리면 몇천만 원 나온다는 말만 믿고 덜컥 사인을 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요즘 보험 시장이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듣고 나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가진 건 4세대 실비랑 옛날식 종합 보험 몇 개가 전부인데, 이게 과연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대로 나올까 싶었다. 특히 최근에 현대해상 건강보험 같은 상품들을 살펴보다 보니, 내가 가입한 건 보장 범위가 너무 좁은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다.
보험료 130원짜리 상품의 유혹과 현실
인터넷을 조금 검색해보니 1년짜리 일시납으로 10만 원 정도 지급하는 미니 보험들이 눈에 띄었다. 40세 기준 남성 보험료가 130원이라는 광고를 보고는 정말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물론 이건 아주 일시적인 보장일 뿐이고, 내가 진짜 고민하는 건 암이나 뇌혈관질환 같은 큰 병이 왔을 때다. 옛날에는 뇌출혈, 뇌졸중만 보장되던 것들이 요즘은 뇌동맥류까지 챙겨야 한다고들 하던데, 그런 세부적인 항목들을 하나하나 맞추려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대리점 한두 곳에 물어봤더니 다들 본인들이 취급하는 상품이 최고라고 하는데, 누가 진짜 내 편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어떤 설계사는 부정맥 진단비까지 꼭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사실 그것도 다 돈인데 싶어서 선뜻 동의가 안 됐다.
치료비 그 이상의 고민들
예전 보험들은 단순히 ‘진단받으면 돈을 준다’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 나오는 상품들은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까지 고려한다는 홍보 문구들이 참 거창하다. 치매 신약 부작용까지 보장한다거나, 회복과 돌봄까지 연결해준다는 내용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했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그 혜택을 다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는다. 사실 치질 수술비 같은 건 보험이 있어도 청구하기가 묘하게 민망해서 미루게 되는데, 이런 자잘한 것들까지 챙기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상담을 받을수록 점점 더 큰 보장을 원하게 되는 내 욕심이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조금 지치기도 했다.
유병력자 실비로 갈아탈까 말까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조금 높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유병력자 실비 보험이라는 게 눈에 띄었다. 지금 가입한 실비를 해지하고 갈아타야 할지, 아니면 그냥 유지해야 할지 선택하는 게 정말 어렵다. 10년 넘게 매달 나가는 보험료를 합치면 꽤 큰 돈인데, 정작 아프지 않으면 그냥 사라지는 돈이라는 생각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롯데손해보험 같은 곳에서 나오는 간편 고지 상품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막상 가입 신청서를 써 내려가려니 내 과거 병력 하나하나가 발목을 잡는 기분이다. 혹시나 거절당할까 봐 괜히 조심스러워지고, 보험은 들 때보다 유지할 때가 더 힘들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끝나지 않는 정리 작업
결국 몇 주째 증권들만 들여다보다가 오늘은 그냥 덮어버렸다. 보험이라는 게 원래 내일 일을 대비하는 거라는데, 오늘 당장 나가는 보험료를 줄여야 할지 아니면 더 넓은 보장을 위해 더 큰 돈을 써야 할지 결론을 내리기가 참 어렵다. 주변에서는 다들 리모델링이다 뭐다 해서 새로 갈아타기도 하던데, 나는 아직도 예전 보험이 주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보험이란 게 100% 만족할 수는 없는 구조인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정말 아프게 되었을 때, 그때 가서야 내가 선택했던 이 보험들이 ‘잘한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 당분간은 지금 가진 것들 중에 정말 불필요한 특약 몇 개만 빼고 그대로 유지해보기로 했다. 뭔가 정리가 된 것 같으면서도 찜찜한 기분은 여전하다.
서랍에서 오래된 보험 증권들을 보니, 그때는 진단비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게 정말 어리석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