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약간 내렸고, 캐리어 바퀴 하나가 삐걱거려서 출발 전부터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는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인천공항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지 않아 동선은 짧은데, 가끔 면세점 구역이나 편의시설을 이용할 때면 묘하게 아쉬운 구석이 있다. 2층 출국장 근처 벤치에 앉아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여권을 챙기는데, 아내가 갑자기 여행자보험은 들었냐고 물어봤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환전이랑 와이파이 도시락 같은 건 며칠 전부터 꼼꼼히 챙겼으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보험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해공항 출발 당일에서야 보험 가입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급한 마음에 공항 내에 오프라인 보험사 대리점이 있는지 사방을 둘러봤다. 예전에는 출국장 근처에 몇 개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모바일 가입이 대세가 되어서 그런지 오프라인 카운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간신히 찾더라도 현장에서 가입하는 상품은 대기 줄도 길고 가격대가 예상보다 훌쩍 올라간다. 보통 다이렉트로 미리 해두면 몇천 원에서 비싸야 1만 원대면 해결될 것을, 공항 현장 카운터에서 급하게 하려면 인당 3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제시받기 일쑤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마음은 급해져서 결국 제자리에 서서 핸드폰을 켜고 모바일로 직접 해결해 보기로 했다.
공항 대기선에서 부랴부랴 검색해 본 단기여행자보험 가격 차이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시작했다. 요즘은 뭐 그리 비교 사이트가 많은지, 대충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형 보험사부터 이름 모를 중소 업체까지 리스트가 끝없이 떴다. 대략 4일짜리 단기 일정 기준으로 비교해보니 가장 저렴한 건 7천 원대도 있었고, 보장 범위가 조금 넓은 건 1만 8천 원 선이었다. 가격 비교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모바일 화면에서 개인 정보 입력하고 인증하는 과정이었다. 공항 무료 와이파이는 신호가 약해서 자꾸 끊겼고, 내 데이터 요금제도 다 써서 속도가 느려 터진 상태였다.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로딩 표시가 뱅글뱅글 돌 때의 그 초조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미성년자인 아이를 동반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모바일 인증의 한계
내 것 하나만 가입하는 거라면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인증 같은 걸로 1분 만에 끝냈을 거다. 문제는 중학생인 미성년자 자녀의 보험도 같이 묶어서 가입해야 했다는 점이다. 법이 바뀐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미성년자 자녀를 동반해서 다이렉트 보험에 가입하려고 하니 본인 인증 단계에서 꽉 막혀버렸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첨부하라는 문구가 뜨거나, 부모의 공동인증서가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 태반이었다. 여행 가는데 핸드폰에 공인인증서나 주민등록등본 파일 같은 걸 담아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보안 카드를 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만 빼놓고 우리 부부만 가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비행기 탑승하기 딱 20분 전에 겨우 결제까지 끝마쳤던 순간
탑승 수속을 하라는 안내 방송이 공항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마음이 너무 급해져서 손가락이 자꾸 헛눌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미성년자 자녀도 대표 가입자의 휴대폰 인증만으로 함께 묶어서 결제할 수 있는 다이렉트 상품을 찾아냈다. 대형사 제품이었는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기본형보다 한 단계 높은 보장으로 선택해 세 식구 합쳐서 대략 4만 5천 원 정도를 결제했다. 화면에 ‘가입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뜨고 나니 비행기 탑승 마감 20분 전이었다. 헐레벌떡 게이트로 뛰어가는 내내 내가 뭘 보장받았는지, 지연 보상은 제대로 포함된 건지 확인할 정신조차 없었다.
하필 귀국길에 터진 항공기 지연과 예상외로 복잡했던 보상 청구 서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떠난 여행은 좋았으나, 진짜 문제는 돌아오는 날 발생했다. 기상 악화로 인해 우리가 타야 할 저가 항공사 비행기가 무려 4시간 가까이 지연된 것이다. 공항 대기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문득 출발할 때 정신없이 가입한 여행자보험이 생각났다. 약관을 뒤적여보니 항공기 지연 보상 항목이 들어가 있었다. 지연 시간 동안 식비나 대체 교통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속으로 ‘그나마 보험을 들어둬서 다행이다’라며 영수증을 챙겼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 보상을 청구하려고 하니 요구하는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만 원 받으려다 서류 떼는 게 더 귀찮아서 포기하고 만 서랍 속 영수증들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항공사 지연 증명서 공식 서류, 보딩패스 원본 사진, 그리고 지연 시간 동안 공항에서 사 먹은 음식점의 상세 품목이 적힌 영수증 등이었다. 외국 현지 공항에서 카드로 대충 결제한 영수증에는 품목 이름 없이 그냥 총액만 달랑 적혀 있었는데, 이런 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해당 외국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지연 증명서를 영어로 신청하고 발급받는 과정도 너무나 번거로웠다. 기껏해야 공항 식당에서 햄버거 사 먹은 돈 3~4만 원 정도 돌려받겠다고 주말 내내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청구 기한을 넘길 때까지 서류를 다 채우지 못했고, 그 영수증들은 아직도 거실 서랍 한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여행 가기 전날 집에서 차분하게 가입해야겠다고 다짐만 하면서.
맞아요. 저도 해외여행 전에 항상 보험을 다이렉트로 알아보고는 하는데, 현장에서 급하게 구매해야 할 때 가격이나 절차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네요.
핸드폰으로 가입하는 게 쉽긴 하지만, 미성년자 보험 때문에 정말 난리더라고요.
와,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여행자 보험 가입하려다가 비행기를 놓칠 뻔했는데, 보상받으려고 서류 준비하는 게 엄청 힘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