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보험 증권을 꺼내보다가 그만두었다

오래된 보험 증권을 꺼내보다가 그만두었다

서랍 구석에서 나온 종이 뭉치들

주말에 정리를 좀 하겠다고 큰맘 먹고 안방 서랍을 열었는데, 웬 보험 증권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엄마가 가입해주셨던 것부터 사회 초년생 때 멋모르고 지인 부탁으로 들었던 것까지 섞여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이게 CI보험인지 일반 질병보험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십 년도 더 된 것들이라 지금 보면 보장 범위가 터무니없이 좁은 것도 있을 텐데, 막상 하나하나 들여다보려니 숨이 턱 막힌다. 어차피 상담사에게 연락하면 리모델링 어쩌고 하면서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라는 소리만 할 게 뻔해서 그냥 다시 서랍에 밀어 넣었다.

보험금 조회라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한지

내 보험 진단인지 뭔지 해주는 앱들도 많다길래 몇 번 시도해보려 했다. 휴대폰 인증하고 약관 동의하고 나면 무슨 데이터 권한을 그렇게나 요구하는지.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어디서 봤던 보험사 사망보험금 지급 거절 사례가 떠올랐다. 보험사라는 게 참 희한하다. 돈 낼 때는 세상 친절하게 자동이체 계좌만 가져가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약관의 꼬투리를 잡는다는 뉴스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나도 혹시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지급 거절당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확인하는 것조차 찜찜해지는 기분이다.

상담은 예약조차 쉽지 않다

지인 중 한 명이 보험 설계사로 일하고 있어서 슬쩍 물어볼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한테 연락하는 순간부터 시작될 영업 멘트가 벌써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보험 가입하면 사은품 챙겨줄게’라는 식의 뻔한 마케팅 문구도 이제는 별로 달갑지 않다. 사실 지금 내고 있는 보험료만 해도 매달 20만 원이 넘어가는데, 정작 무슨 보장을 받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가 벌써 몇 년째다. 생명보험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혹시나 치아 교정 같은 거 하려고 알아봤던 부정교합 보험은 어디 갔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삿짐 센터 부를 때 화물 운송 배상보험 같은 거 챙기는 건 그렇게 꼼꼼하면서, 왜 내 몸 보험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보험료 납입만 계속되는 현실

요즘 증시가 좋다고 다들 돈을 빼서 주식으로 옮긴다는 기사를 봤다. 생보사에서 해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데, 나도 이참에 다 정리하고 예금이나 넣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또 괜히 해지했다가 나중에 병원비 낼 때 후회할까 봐 그러지도 못한다. 저축성 보험 해지 문의가 많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내가 가진 건 보장성 위주라 해지 환급금도 별로 안 될 게 뻔하다. 결국은 보험사의 건전성을 걱정하는 뉴스나 보면서, 오늘도 꼬박꼬박 나가는 보험료를 그냥 감당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결국 서랍은 다시 닫았다. 증권들을 다 꺼내서 정리하다 보면 뭐라도 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민만 더 늘어났다. 리스크 탐지 플랫폼이니 뭐니 하는 최신 기술들 뉴스가 나올 때마다 보험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정작 가입자인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다음에 다시 마음먹고 증권을 정리할 때는 좀 더 여유가 있겠지 싶지만, 사실 다음이라는 게 올지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이라도 잊고 살아야겠다.

댓글 1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오래된 보험들 정리하려고 했는데, 사실 제가 정확히 어떤 보장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엄청 필요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