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두툼한 서류 뭉치들
주말에 갑자기 꽂혀서 방 정리를 시작했다. 원래 청소라는 게 그렇다.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갑자기 서랍 밑바닥이 보이고, 거기서 잊고 살았던 물건들이 튀어나오는 법이니까. 이번엔 보험 증권들이 그랬다. 20대 후반인가, 사회초년생 시절에 지인 소개로 여기저기 가입했던 것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그렇게 다급하게 사인했나 싶다. 그때는 누가 어디가 좋다더라, 이게 필요하다더라 하면 덜컥 가입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으니까. 꺼내놓고 보니 종이 뭉치만 해도 꽤 두툼했다.
보험료가 도대체 매달 얼마가 나가는 건지
펼쳐보니 가관이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해보험, 생명보험, 실비보험까지. 이름도 낯선 것들이 튀어나왔다. 앱으로 흩어진 내 보험들을 한 번에 조회해봤는데,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을 보고는 조금 멍해졌다. 정확히 계산해보니 대략 한 달에 2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가 보험료로 묶여 있었다. 물론 이게 적정 금액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예전에는 이런 거 전문 상담사한테 물어보면 알아서 다 진단해주고 그랬는데, 요즘은 비대면으로도 앱이 잘 나와 있어서 혼자 끙끙대며 확인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화면을 봐도 특약 이름들이 하나같이 다 외계어 같다. 질병 분류 코드가 어떻고, 갱신형 비갱신형이 어떻고 하는데 읽다가 뒷목이 당겼다.
다이렉트 보험으로 갈아탈까 고민했던 순간
요즘은 다이렉트 보험이 대세라길래 비교 사이트를 좀 뒤져봤다. 확실히 설계사를 통하는 것보다 매달 내는 비용이 몇천 원에서 많게는 만 원 정도 저렴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이게 이미 가입한 걸 해지하고 새로 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안 섰다. 중간에 해지하면 원금도 다 못 찾고 손해 본다는 얘기가 뇌리에 박혀 있어서, 섣불리 건드리지도 못하겠다. 주변에서는 ‘보험 다이어트’라는 말도 하던데, 나처럼 귀찮은 거 싫어하는 사람이 그 복잡한 약관을 다 읽고 비교해서 정리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결국 비교 사이트 창만 몇 번 새로고침 하다가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괜히 건드렸다가 더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서랍 속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류들을 다시 봉투에 넣어서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중에 시간 내서 꼼꼼히 읽어보고, 정말 불필요한 건 정리하겠다고 다짐만 했다. 사실 이 ‘나중에’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만, 지금 당장 이걸 다 파악하기에는 내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밀린 빨래나 돌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보면 보험은 가입할 때보다 유지하는 게 더 큰 고역인 것 같다. 특히 내가 뭘 들고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냥 그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싶은 마음
물론 불안한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뉴스를 보면 요즘은 나이 들어서 간병보험이나 연금 쪽으로도 많이 준비한다던데, 나만 너무 아무 대책 없이 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보험 상담을 받으러 가자니, 상담 한번 잘못 받았다가 원치 않는 상품을 권유받을까 봐 그게 더 겁난다. 예전에 한 번 상담받았다가 그 뒤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더 그렇다. 그냥 매달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나한테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금’처럼 느껴진다. 당분간은 그냥 이 상태로 놔두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살면서 그냥 눈감고 사는 건지, 아니면 다들 나보다 훨씬 똑똑하게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다.